1. 서 론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Bronze)은 고대부터 검, 촉, 창 등의 무기류, 거울 및 방울과 같은 의기류, 접시, 그릇, 수저 등과 같은 생활용기 및 불상, 범종 등에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는 베어링의 소재 및 조형물 제작에 쓰이는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금속이다. 고대 청동 야금 공정은 광산에서 광석을 채취하는 채광(Mining), 광석 내 불필요한 맥석을 제거하여 금속 함유량을 높이는 과정인 선광(Ore dressing), 광석 내 포함된 황(S)을 제거하는 과정인 배소(Roasting), 금속을 추출하는 제련(Smelting)을 거쳐 기물의 특성에 맞게 용해(Melting), 주조(Casting)하는 과정으로 구분된다. 합금(Alloying)은 제련 또는 용해 공정 중에 진행되며 구리 광석과 주석 광석, 금속 구리와 주석 광석, 금속 구리와 금속 주석을 이용한다 [1]. 이러한 청동 야금 공정에서는 금속 뿐만 아니라 공정에 사용된 노, 송풍관, 거푸집, 도가니, 슬래그 등이 생산되며 우리는 이러한 부산물, 특히 슬래그의 미세구조 및 화학 분석을 통해 사용된 재료, 제조단계 및 제조환경 등의 제작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2].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의 왕경인 경주, 백제의 왕경인 부여 및 익산 등지에서 청동 공방 유적이 발견되었다. 특히 경주에서는 17개소의 공방 유적이 발굴되어 통일신라시대의 청동 야금 기술을 추정할 수 있다 [3]. 경주 동천동 유적에서 도가니와 슬래그가 출토되어 구리-주석, 구리-주석-납, 구리-납의 합금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4]. 경주 노서동 유적 출토 슬래그의 분석을 통해 구리와 주석산화물이 확인되어 합금의 방법을 확인했다. 이 때의 합금은 제련된 금속 구리에 주석 광석을 첨가하거나 구리 광석과 주석 광석을 혼합하는 방법이었다 [5]. 익산 왕궁리 유적 출토 슬래그를 통해 금속 구리에 금속 또는 광석의 주석, 아연, 납을 넣어 청동 또는 황동을 제작한 것을 확인되었다 [6]. 부여 능산리사지에서는 동피(matte)를 정련한 조동(crude copper), 금속 구리에 주석을 첨가한 이원계 청동, 금속 구리에 주석, 납을 첨가한 삼원계 청동의 부산물이 출토되어 7세기 백제의 금속 야금 기술을 추정할 수 있다[7]. 충남 서천에서 백제의 주조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주종유구가 발견되었다. 주종유구란 종을 제작하기 위한 공간으로, 주조틀, 거푸집, 청동슬래그 및 기와 등이 출토되었으며 청동 슬래그의 분석을 통해 종을 주조하기에 알맞은 비율로 구리, 주석, 납을 합금했음을 확인했다 [8]. 고려시대의 청동 생산 유적지로는 완주 신풍유적과 진안 제동유적이 있다. 완주 신풍유적에서 청동 슬래그가 출토되어 금속 구리에 주석 및 방연석을 첨가하여 삼원계 합금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9]. 진안의 제동유적은 구리 광석을 제련하여 금속 구리를 생산하던 곳으로, 제동로를 포함하여 노벽편, 숯 및 슬래그 폐기장 등이 발견되어 고려시대 이후의 야금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10]. 하지만 앞서 언급한 청동 생산 유적 외 구리, 주석, 납 광산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청동의 제작에 사용된 원료 광석이 무엇인지, 선광 및 배소 등의 공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청동 야금 기술은 보편적인 기술이므로 국외의 연구사례로 우리의 기술 또한 추정할 수 있으나 지역별, 시대별 특수한 기술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적지 뿐만 아니라 출토되는 부산물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백제 왕궁지로 알려져 있는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도가니와 슬래그의 미세구조 및 화학분석을 통해 청동 제작에 사용된 원료 광석의 종류 및 산지, 슬래그가 배출된 청동 야금 공정 및 제조 환경 등을 확인하고자 했다.
2. 연구방법
본 연구의 대상은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도가니 및 슬래그 8점이다(표 1).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나’ 지구 노 시설 집중 분포지에는 철, 청동, 금, 금동, 유리 등의 다양한 소재의 원료와 제품, 도가니, 찌꺼기 등이 출토되어, 백제 왕실에 부속된 금속 생산 관련 시설임을 추정할 수 있다 [11]. 도가니와 슬래그는 각각 4점씩이며 도가니 시편 내측에 부착된 용융 슬래그를 채취하여 분석에 사용했다. 미세조직 관찰 및 분석을 위해 마운팅한 시편을 SiC 연마포(#200-#2400)로 연마했으며 다이아몬드 연마제와 광택천을 이용하여 경면 연마했다. 연마한 시편을 에칠알콜에 침적시켜 초음파세척기로 세척하여 건조했으며 이후 염화철 부식액(FeCl3+HCl+H2O)으로 에칭했다. 미세조직은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 Carl Zeiss, Axiotech 100HD, Germany)과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JSM-IT300LV, Jeol, Japan)의 후방산란전자(BSE) 모드로 관찰했다. 성분 및 원소 분석은 에너지 분산형 분광분석기(Energy Dispersive Spectrometer, X-MAX 7, Oxford, England)를 이용했다. 미세조직의 동정은 라만 분광 분석기(XperRam F2.8, NanoBase, Korea)를 이용했으며 광원 473 nm, 40배율 렌즈(Oylmpus)로 grating 1800gr/mm을 사용하여 분자 구조를 분석하였다. 측정된 데이터는 레퍼런스와 주요 피크를 비교하여 동정했다. 슬래그 및 도가니의 광물결정상 분석은 X선 회절분석기(Empyrean, Panalytical, Netherlands)를 이용했다. Cu Target(CuKα =1.5406Å)을 이용하여 45 kV, 40 mA의 조건에서 20-60° 2-theta 범위에서 step size 0.02°로 분석했다. 분말시료를 제작할 수 없는 특성을 고려하여 문헌의 응용된 방법[12, 13]과 같이 단면 시편을 기기규격 기준 스캔 영역에 거치하여 비파괴 스캔을 수행했다. 납동위원소비는 레이저 삭마 다중검출기 유도결합플라즈마 질량분석기(Laser Ablation Multi Collector Inductively Coupled Plasma Mass Spectrometer, Isoprobe-T, IsotopX, GBR)를 통해 측정했다. 분석 직경은 80-120 µm, 반복률(repetation rate) 3-20 Hz로 선(line) 분석했으며 시료 당 3-5번의 분석을 통해 평균값을 구했다. 외부 보정을 위해 NIST NBS 981 시료도 같이 분석했으며 분석값은 206Pb/204Pb=16.970±0.008, 207Pb/204Pb=15.514±0.012, 208Pb/204Pb=36.773±0.064, 207Pb/206Pb=0.9150±0.0005, 208Pb/206Pb=2.1689±0.0017 (N=4, 2σ standard error)이다. 레이저 삭마 다중검출기 유도결합플라즈마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납동위원소비 분석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수행했다.
3. 결과 및 고찰
도가니 및 슬래그 시편 8점 중 유리질 바탕조직이 존재하는 7점의 시편에 대해 EDS 분석을 하여 화학성분 조성을 확인했다(표 2). 시편의 화학성분 조성은 CuO의 검출 유무에 따라 크게 2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GB01, GB02, GB06 및 GB08에서는 높은 CuO와 상대적으로 낮은 FeO, SiO2 함량을 보인다. 반면 GB04, GB05 및 GB07에서는 CuO가 검출되지 않으며 FeO와 SiO2 함량이 높음을 알 수 있다. CuO의 높은 함량은 슬래그의 유리질 바탕조직 내 미세 산화구리 결정 때문이라 추정된다. 시편 7점의 유리질 바탕조직에서는 SnO2가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SnO는 고온의 환경에서 silicate에 용해되지만 SnO2의 경우, silica와 반응하지 않기에[14] 유리질 바탕조직에서 검출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모든 시편에서는 FeO가 2-8 wt% 검출되어 철이 풍부한 맥석 또는 첨가제를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첨가제로는 산화철, 실리카, 산화망간 등이 사용되며 저점도의 슬래그를 형성하여 금속과 슬래그가 분리되는데 영향을 준다 [15]. Na2O, MgO, Al2O3, K2O, CaO 등의 성분은 도가니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GB01의 유리질 바탕조직에서는 PbO가 1 wt% 이상(3.09 wt%) 검출되어 불순물로 포함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림 1은 도가니 내측에 부착된 슬래그 시편인 GB01의 BSE(backscattered image) 및 mapping 결과로, 유리질 바탕조직 내 침상, 구형, 장사방형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이 확인되며 시편의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의 조직이 관찰되어 불균질함을 알 수 있다. 성분 mapping을 통해 유리질 바탕조직은 Ca와 Si가, 침상 조직에서는 Cu와 Fe가, 구형 조직에서는 Cu, 장사방형 조직에서는 Sn이 검출됨을 알 수 있다. Sn이 포함된 방형 조직은 주석 산화물(SnO2, cassiterite)로 판단되며[1,16-18], 주석 산화물 내 산화구리 prill(CuOx)이 관찰된다. 주석 산화물의 존재가 주석 광석을 사용한 합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여 관북리백제 유적 주변에 주석 광산과 관련된 유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장사방형의 주석 산화물 미세조직 및 장사방형 내 산화구리 prill의 존재는 주조 동안의 산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1,19]는 기존의 연구결과가 있다. X선 회절분석을 통해 자철석(magnetite, Fe3O4)을 포함한 구성 물질의 화학 조성을 확인했으며 라만 분광분석을 통해 X선 회절분석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침상의 delafossite(CuFeO2)를 분석했다(그림 2). GB01 시편에서 관찰되는 미세조직을 통해 야금 공정 당시의 환경을 추정할 수 있다. Cu-Fe-O의 삼원계 상평형도에 따르면, 대기 중에서 delafossite는 1,070 °C에서 spinel로 상변이가 일어나며 Cu와 Fe의 몰농도에 따라 Cu가 풍부한 영역에는 구리 산화물과 delafossite가, Fe가 풍부한 영역에서는 자철석과 같은 spinel이 존재한다 [20]. 따라서 GB01은 delafossite가 안정한 1,020-1,070 °C에서 공정이 진행되었으며 Cu와 Fe의 몰농도에 따라 다양한 미세조직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GB01은 S가 검출되지 않고 청동 prill이 관찰되지 않아 합금이 아닌 중간 소재의 용해에 사용된 도가니로 판단된다. 또한 Pb 결정 등은 확인되지 않으나, 유리질 바탕조직에서 PbO가 3.0 wt% 이상 검출되어 Cu-Sn-Pb 삼원계 중간소재의 용해 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GB02의 미세조직은 유리질 바탕조직 내 침상의 delafossite가 발달된 부분과 자철석 및 산화구리 prill이 공존하는 부분으로 구분된다(그림 3). Delafossite가 발달된 부분은 도가니 상단과 가까우며 자철석이 발달된 부분은 delafossite가 존재하는 부분보다는 하단에 위치한다. Delafossite 주변으로 자철석과 주석 산화물이 관찰되며 이때의 주석 산화물은 장사방형의 GB01과는 달리 무정형의 형태를 지닌다. 유리질 바탕조직은 미세 산화구리 결정으로 인해 Cu의 함량이 높게 나타나(CuO 27.01 wt%) 금속이 아닌 구리 광석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X선 회절분석을 통해 자철석이 발달된 부분에는 산화구리 prill도 존재하여(그림 2) 도가니 내 국부적으로 강한 환원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산화구리는 주석 산화물(SnO2) 및 자철석(Fe3O4)보다 Gibbs 자유에너지가 작으므로 청동에 포함된 주석 및 철이 고온에서 먼저 산화하여 주석 산화물과 자철석을 생성하고 그 이후에 산화구리가 생성되었을 것이다. GB02 역시 Cu-Sn의 이원계 중간소재의 용해에 사용된 도가니로 판단되며 도가니 내 반응 온도는 delafossite가 spinel로 상변이가 일어나는 1,070 °C 내외로 추정된다.
관북리 백제유적 ‘라’지구에서 출토된 슬래그 GB03의 미세조직은 그림 4와 같다. α 상 및 δ 상의 주조 조직과 흑색의 기공, 회백색의 개재물이 관찰된다. EDS 분석 결과, α 상에서는 Sn이 8~13 wt%가 검출되었으며 흑색의 기공에서는 구리 입자가 확인되었다. 회백색의 개재물에서 Pb와 S가 검출되어 납 편석물임을 알 수 있다. 납은 구리 또는 주석에 고용되지 않으며, 응고되면서 조직 내 원형의 편석을 이룬다. 조직과 조직 사이의 균열에서 용융되지 않은 결정이 관찰되어 성분 분석한 결과, Pb 및 S가 확인되어 방연석(galena, PbS)으로 판단했다. 이는 방연석의 특징인 등축정계 결정 및 벽개가 관찰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방연석 주변의 결정에서는 Cu와 Cl이 검출되었으며 매장 환경으로 인해 생성된 부식물로 판단된다. 고대 청동의 합금은 금속의 원료(구리, 주석, 납)를 합금하거나, 금속의 원료와 광물의 원료를 합금하거나, 광석의 원료를 함께 용해하거나, 중간소재에 광석의 원료를 추가하여 합금하는 방법이 있다 [1,17-18]. GB03은 Cu-Sn 이원계 중간소재에 납 광석인 방연석을 첨가하여 삼원계 합금 시 배출된 슬래그로 추정된다.
출토 도가니 및 슬래그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는 표 4와 같다. 전체 4점(GB01~04)을 분석했으나 2점의 시편(GB02, GB04)은 검출되는 납의 함량이 적어 신뢰성이 낮아 데이터에서 제외했다. GB01과 GB03은 Cu-Sn-Pb 삼원계 청동의 용해 시 생산된 슬래그이다. Cu-Sn-Pb 삼원계 청동의 납동위원소비는 납의 산지를 대변한다. 따라서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통해 백제시대 왕실의 청동 공방에서 사용된 납의 원료 산지 및 운반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관북리 백제유적에서는 한반도 내의 금속 원료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분석 결과를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광역분포도[21,22]에 적용하여 출토 청동 슬래그의 납 원료 산지를 확인했다(그림 5).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는 한반도 남부의 납 광산 101개에서 채취한 방연석 346개의 납동위원소비 결과를 지질학적, 지리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zone으로 구분한 도표이다 [22]. Zone 1은 지리학적으로는 경상남북도를, 지질학적으로는 경상분지를 의미하며, 일본 방연석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와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Zone 2는 경상북도 일부와 강원도 남부를 의미하며 태백산분지와 일부 영남육괴의 납동위원소비를 대표한다. 또한 한반도 방연석의 납동위원소비 중 가장 높은 값을 보인다. Zone 3은 전라남북도 및 충청남북도의 옥천변성대, 영남육괴 및 경기육괴에 위치한다. Zone 4는 경기도와 일부 충청북도의 경기육괴를 대표한다. 관북리유적 출토 슬래그 GB01은 206Pb/204Pb vs. 207Pb/204Pb 도표와 207Pb/204Pb vs. 208Pb/206Pb 도표에서 zone 3에 위치한다. GB03은 206Pb/204Pb vs. 207Pb/204Pb 도표에서는 zone 2, 207Pb/204Pb vs. 208Pb/206Pb 도표에서는 zone 2와 가까운 zone 3에 위치한다. 또한 한반도 방연석의 납동위원소비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GB01은 경북 상주에 위치한 신오광산과, GB03의 납동위원소비는 충남 청양의 삼광광산의 납동위원 소비와 유사함을 확인했다. 따라서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공방에서는 충남과 경북의 광산에서 생산된 납 원료 광석을 사용하여 청동기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충남 청양은 공방과 가깝지만 경북 상주에서 충남 부여까지 원료 광석을 옮기는 것은 그 당시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운반에 필요한 물류비를 절감하기 위해 광산에서 직접 제련하여 순도가 확보된 금속 또는 광석에서 맥석을 골라내어 품위를 높인 광물을 소비지에 가까운 공방으로 운반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납의 원료인 방연석의 경우 청동의 제작에 필요한 양이 동광석에 비해 적기 때문에 광산에서 맥석만 골라내어 정광 상태로 소비지(공방)까지 운반하였을 것이다.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은 백제 사비기 왕궁터로, 유적 내공방지 및 다양한 형태의 생산 부산물이 발견되어 국가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는 관영 수공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 관북리유적 내 공방지는 광산 또는 제련 공정이 아닌, 용해 또는 재용해 공정과 관련있다 판단했다. 구리 제련 슬래그에는 일반적으로 delafossite, cuprite 및 magnetite 조직이 관찰되나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슬래그(GB01, GB02)에서는 cassiterite 조직도 확인되어 제련 공정에서 생산된 부산물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합금 공정에서 생산된 도가니 및 슬래그에서는 잔류 cassiterite 및 산화구리, 청동 입자 등이 관찰되는데 이러한 미세조직 또한 확인되지 않아 용해 또는 재용해 공정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관북리유적의 공방지에서는 이원계 청동의 중간소재를 이용, 기물을 제작하거나 방연석을 첨가하여 삼원계로 합금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청동의 미세조직 내 용융되지 않은 방연석 결정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삼원계 청동의 합금에는 여러 광산의 방연석을 사용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문헌에 나타난 납의 산지 중 zone 2와 zone 3에 위치한 지역으로는 강원도 정선, 충북 충주 및 괴산, 경북 봉화·안동·경주, 경남 김해·창원·사천·하동 등이 있다. 비록 슬래그의 납동위원소비가 문헌에서 납의 산지로 기록된 지역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생산지와 가까운 충청남도와 경상북도의 방연석을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결 론
6-7세기 백제 사비시대의 왕궁지로 알려져 있는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도가니 및 슬래그의 8점의 미세구조 및 화학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성분 분석 결과를 통해 도가니에 부착된 유리질의 슬래그 등 시편 7점의 화학조성은 CuO의 함량에 따라 2개의 그룹으로 구분되며 FeO의 검출을 통해 철이 풍부한 맥석 또는 첨가제를 사용했음을 추정했다.
2. 도가니 슬래그 및 슬래그의 미세조직 및 성분분석을 통해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는 Cu-Sn의 이원계 및 CuSn-Pb 삼원계 청동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청동의 제조 단계 중 중간소재의 용해 공정에서 배출된 슬래그이며, 이때의 반응온도는 1,100 °C 이내로 추정된다.
3. Cu-Sn-Pb의 삼원계 청동은 Cu-Sn의 이원계 중간소재에 납 광석인 방연석을 첨가하여 합금한 것을 확인했다.
4.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출토 슬래그 2점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가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 내에 zone 2 및 zone 3에 위치함을 알 수 있었으며, 한반도 방연석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와의 비교를 통해 청동 제작에 사용된 방연석의 산지가 충남과 경북의 광산임을 확인했다.
슬래그는 금속의 제조에 사용된 원료의 상태와 산지, 제조의 단계와 제조환경 등, 그 당시의 야금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부산물이다. 국외의 경우, 광산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슬래그 등의 다양한 부산물을 통해 제작 기술, 기술의 발전과 전파, 유통의 단계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토된 청동기에 비해 생산 유적(광산) 및 슬래그가 출토되는 소비지(공방)가 많이 발견되지 않아 그와 관련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문헌 연구 뿐만 아니라 출토되는 청동 도가니 및 슬래그 등을 분석하여 데이터를 축적한다면,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 기술 연구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